일상의 비범함
영화와 티뷔/CINEMA테끌까?! 2007/07/28 03:03오늘 저녁 우리 아부지는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설겆이는 나와 함께 하겠다며 엄마에게 휴식을 주자고 했다.
정말 진공상태 같은 더위때문에
움직이는 것 조차 몽롱해지는 이날
할머니 생신이라고 모인 온 가족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서울에 올라가는 삼촌에게 감자며, 김치며 이런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시는 엄마를 보면서 아마 아빠도 살아오신 내내
그래.. 내가 기억하는 동안에서는 처음일지도 모를
설겆이를 하자며 나를 볶아대신 것일 것이다.
그것도. 들들들.. 달달달..
물론.... 설겆이그릇만 부엌으로 옮겨놓으시고.. 내가 치웠으니
말그대로 설겆이는 네가!!... 부릅!!! 이라는 ... 눈빛을 한판 쏘아주시며
엄마 얼굴로 선풍기를 틀어주시고, 엄마주변에서 놀고 있던
290일째 살고있는 조카녀석을 안으셨다.
문득 설겆이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참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것인가 말이다.
내가 오늘 보낸 이 찰나의 하루가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 생전 다시 겪어보지 못할 희망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아프칸에 피랍된 사람들, 돌아가신 목사님.
아직도 포환의 굉음과 총소리가 가시지 않은
중동의 여러나라들.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던 레바논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희일비하는 생환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명명하는 동물들이 살고 있는 데 신이 이들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
자유의지고, 또 불행도 아마 이 자유의지일 것이다.
의지는 갖는 자의 것이고, 실천하는 것이지만..
어떤 권좌의 누가, 어떤 누가. 그래서 어떻게
어떤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한사람 한사람 삶의 척도가 변한다.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 네트워크를 논하자면
밑도 끝도 한도 끝도 없지만.. 이 찰나의 행복이 단순간에
파괴되는 것이 어찌 나라와 나라만의 전쟁이겠는가.
그것은 전쟁이라고 은유되는 인간사 모두에게 속할 것이겠지만
가장 물리적인 파괴력을 눈앞에 들이미는 것이
바로 이 전쟁일 것이다.
내 삶도 전쟁이고, 입시도 전쟁이고, 취업도 전쟁이지.
물론.. 정말로.. 이 물리적인 파괴력을 목도한 포환의 잿더미속에서
삶의 영위해가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미울음소리 같겠지만 말이다.
사설이 실없이 길었지만
왜 하필.. 가장 평범한 것같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이 찰나의 행복을 느끼는 이날 화려한 휴가를 보게되었는지는 또 모를 일이다.
아마도 내심, 이 영화가 상업적인 목소리로 상투를 뒤집어 쓴채
눈물샘만을 자극해서 오히려 5.18을 역행하지는 않을까..
뭐 원하는 만큼의 순항을 이뤄본적도 없지만..;..
하는 그런 생각을 잠시 접어두라 싶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온전히 정치적인 목적도 의미도, 구체화하지 않고 그저 그날의 그 광경을 목격한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그대로 투영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위적인 설정도, 과장된 웃음의 코드로 점철된 도입부도, 너무 부재한 공수부대원들의 시각도,
씁쓸함이면서도 고개가 끄덕거리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마지막까지 아직도 우리는 폭도가 아니라고, 우리를 기억하라고 외쳐야만 하는
지금의 5.18의 역사적 과정도, 왜곡당하고, 매도당했던 기억도,
사람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행불자들도, 아직까지 무엇에 욕심이 넘쳐
침을 질질 흘러대는 지 알 수 없는 위정자들도,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공수부대원들도..
그래. .. 그게 그렇게 지금 여기 우리 모두의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는 필요하다. 필요한 것 같다.
어느 기자의 말처럼 이미지의 몸을 빌리지 못한채 구천을 떠돌던 역사가
입기에는 안성맞춤이였다. 꽃잎도 있었고, 오래된 정원도 있었다.
아아.. 그전에 여러 드라마들도 있었고.. 그래 독립영화사들이 만들어낸
날것의 느낌이 드는 독립영화들, 다큐멘터리들도 있었지만.
대중의 함의를 만들어 낼만한 가장 대중적인 코드에 첨작해야만 하는
이런 영화말이다. 역사는 여러각도에서 재조명 해볼 필요가 있다.
그게 상업적이든 작가주의적이든 말이다.
최소한 거짓말을 하자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을 갖고자,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진화의 과정이라는 의미가 담긴.. 진실에 한발자국이라도
더 닿기위한 노력이니 말이다.
눈살을 찌푸릴만한 구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배우들의 감정이입이 도를 지나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였고,
군인들을 매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들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까 싶지만.
결국 내 가슴은 울었다는 거다.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으니까.
나는 광주사람이고, 79년생이고, 많이 접해봐서
그래.. 아마 그래서 누구보다.. 물론.. 그 가족만은
못하겠지만 사는 내내 질척한 피의 느낌을
오롯이 지닌 사진들을 대하며 내내 악몽과
식은땀을 흘려야 했던 나니까.
전기고문으로 눈이 튀어나오고 몸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4수원지에 버려져있던
열사의 사진은 생생하게 내 망막에 맺혀있다.
그 사진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보냈던가 말이다!!!!
나는 그 이후로 사진을 보는 데에 언제나 한호흡이 필요하다.
그것은 5.18의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아아.. 그래 그래서 아마 더 격하게 감정이입이 됐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어느 누가 네가 광주사람이라 그래.. 라고 하면
뭐 할말없다. 이런 변명조차 해야하는 게 아직
이 역사의 발전과정중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런식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거다.
언젠가는 아주 차갑게 이런식으로 접근한 영화를 비판할 수 있도록
더이상 구천을 떠돌지 않고 이미지의 몸을 쭈욱 쭉 입길 바란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얼마나 많은 무고한! 으로 지칭되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소리없이 죽어갔단 말인가.
잊어서도 안되고, 잊을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여전히 구천을 떠도는 역사들은 많다.
역사의 한구석에 있는 어떤 사건을 재조명하려다
어마어마한 권력의 부조리에 맞닥뜨려 서둘러
접었다는 어느 감독의 이야기도. 훗..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민심이 천심이라는
공자의 인을 행해봤으면서도 말이다.
정권교체를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봤으면서 말이다.
사람이 무서운 줄 알면서도 말이다.
아마 인터넷을 통해 뼈저리게들 통감하고 있겠지만..
아직 갈길이 멀지 않은가.
다시 되돌아 가려고 하는 자들에게 그냥 묻고 싶을 뿐이다.
시대를 반성하지 않는 자들의 유산으로 호위호식하는 자들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는 당신들에게 그냥 묻고 싶었다.
정말 돌아가고 싶은지 말이다.
그 위정자들의 시대로.
그냥 궁금하다.
어차피 나같은 소시민의 일상이야 얼마나 크게 변하겠는가.
그저 회사에서 주는 월급받고, 통장에 쌓이는 적금이나 보며
이번달에는 옷을 사고, 다음달에는 컴퓨터를 바꾸고..
그러다가 적금액을 늘려 10년내에는 조그맣지만 내 집을 갖고 싶다는 그런 소망을 가진
그냥 그런 소시민의 일상이 바뀌어봤자 얼마나 바뀌겠는가.
내 아버지의 머리가 개박살이 나지 않는 이상,
내 동생 배에 총구멍이 생기지 않는 이상.
언니가 머리채를 휘어잡힌 채 곤봉에 죽지않을 만큼 맞지 않는 이상.
어느날 갑자기 간첩으로 몰려 나라로부터 고립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아.. 그러고 보니.. 일상이 바뀌는 이유는 아주 갖가지로구나...;;;
내가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거니와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이순간을 위해 오래전 어느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일상을 가지고 있던 누군가들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것에 호소하는 것.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이겠지만 어쩌면
나는 그저 이런 영화를 바래왔는지도 모르겠다.
조낸 울었다.
훌쩍훌쩍.. 주변에서도 다들 울더라.
웃길때도 있고, 슬플때도 있고..
나자신조차도 5.18때마다 보던 거리사진전의 어느 구석장면이
재연되는 데도 멍하니 그저 재연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욱하는 건.. 그러니까 가슴이 우는 거였다.
그래.. 이것도 필요하다.
다른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일상을 지켜내는 힘 말이다.
사는 건 참으로 의미있지만 힘든일이다.
살아나은 자들의 슬픔..
삼시세끼 밥먹는 것도 미안했다라는 지식인들의 부채의식..
멋지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흐흐흐
물론.. 위정자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콩고물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 그저 내 앞길을 위해서면 누군들 짓밟아도 상관없다고 내 자식에게
가르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자기가 나중에 그렇게 될줄도 모르고,
제 어미를 내다버리고 학대한다고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실명으로
거론되는 그 양반의 호로 무려 공원을 만들어버린 어느 군수님같은
분도 계시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
어디보다 낫다. 안그런가.
..... 이것은.. 리뷰도 아니고, 넋두리도 아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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